제5도살장
커트 보니것, 문학동네, 2016.12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2월 연합군은 독일의 한 도시를 폭격한다.
독일군의 저항능력을 분쇄하고, 물자를 공급하던 공장을 불태운다는 것이 이 작전의 목표였다.
그러나 실제 폭격은 공장들이 위치한 도시 주변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밀집해 살고 있던 도심지역이었다.
그 결과 그 도시에 있던 약 15만 채의 집이 파괴되었고, 희생자는 무려 35,000~38,000명(공식 추산)이나 되었다.
이 작전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작전 중 하나인 드레스덴 폭격 작전이었다.
그런데 이 드레스덴에 놀랍게도 미군 포로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살아남은 포로 중에 한 명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Jr.)이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에 의하면...
★ 2009년 뉴스위크 선정 ‘역대 최고의 명저 100’★ 2005년 타임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소설’
★ 1998년 모던라이브러리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학’
등등 화려한 소개가 가득한데...
실제로 읽어보면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
독일 전투의 후방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드레스덴으로, 그리고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으로...
주인공인 빌리 필그림이 계속, 그리고 뜬금없이 막 이동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간단하게 느낌만 이야기한다면...
그냥 웃기고, 어이없고, 당연하게도 슬프다.
그러나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작가는 절대로 어떤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정말 충격적인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미친듯이 같은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 전쟁이 더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특히 주인공이 누군가의 죽음이 나오거나 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뭐 그런거지(so it goes)"
번역자인 정영목 씨에 의하면 이 표현이 약 106번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전쟁이라고 하는 비참한 참극 속에서 한 개인이 꾸역꾸역 살아가고 살아남으려면 어떠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까?
악착같이 뭔가를 해 보고 집착하고 그렇게도 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병사로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렇기에 오히려 쥐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슬픔과 고통이 심해지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오히려 "뭐 그런거지"하면서 체념하고 놓아주는 쪽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
특히 커트 보니것처럼 3일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수 만의 사람들이 죽어간 엄청난 참상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사실 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커트 보니것은 84세까지 매일 담배를 두 갑 이상 피우면서도 잘만 살다가 그 나이에 지붕 수리하러 올라가던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뭐 그런거지(so it goes)"
R.I.P. K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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