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 2018.4
"베어타운"은 "오베라는 남자"로 잘 알려진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사람들의 감정을 촌스럽지 않게 녹여내는 탁훨함 때문에 프레드릭 배크만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작가이다.
원래 주말에 머리도 식힐 겸 소설이나 쉬엄쉬엄 보려고 이 책을 잡았다.
그. 런. 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토요일 밤 12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3시까지, 그리고 그 다음날 오전까지... 570페이지나 되는 책을 말 그래도 한숨에 읽어버렸다.
처음에는 하키(하... 하키라니 정말 안 좋아할 수 없는 소설이다)를 주제로 청소년들의 땀과 우정이 가득 흘러내리는 청춘 소설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 사건으로 인해 베어타운이라고 하는 하키에 죽고 사는 마을이 어떻게 한 가정을 파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작은 용기가,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어떻게 새로운 희망의 싹을 피워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런 책이다. 정말 재미있고, 추천한다.
한줄 요약: 재미있다! 끝!!!
---------- 이하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의 이러한 으스스한 진술과는 상관없이 초반부의 이야기는 정말 하키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 지역의 청소년팀의 선수들의 이야기로 반짝반짝 빛난다. 그냥 스포츠를, 청춘이 흘리는 땀을, 그리고 아이스 하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설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간다.
전국청소년하키대회 4강에서 승리한 베어타운의 선수들은 축하파티를 즐기고 그 와중에 한 선수가 한 소녀를 성폭행 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마을은 정상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가 하키에 광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이 지역의 경제적 발전과 희망까지 하키팀에 걸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히려 피해자인 성폭행 당한 소녀를 비난하고, 거짓말장이로 몰아붙인다.
거기에 피해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지위와 경제적 부를 이용해서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
정말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가 보호받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보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해 내야 하는 의무까지 짊어지고, 주변과 사회로부터 2차, 3차 피해를 당하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소설속의 베어타운은 너무나 닮아있다. 특히 뉴스와 신문의 한 줄 사건으로 그려지는 그 일들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얽혀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고통을 겪게 되는지 몸서리 쳐질 정도로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이 마을에는 아직도 양심이 살아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의 자세를 갖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으려 한다.
최종 결과는 책으로 보면 될 것 같고...
아무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참 어려운 마음으로, 그러나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책을 덮었다.
하키에 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소설 속의 베어타운은 참 우리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하키 대신에 "경제"라는 단어를 넣으면 거의 완전히 동일한 상황처럼 느껴진다.
베어타운에서는 하키 실력만 있으면, 이기기만 하면 윤리적 문제나 정의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된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불란을 일으키는 사람,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돈만 된다고 하면... 경제적 부만 이룰 수 있다면 윤리적 문제나 정의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불평분자... 더 심한 경우는 외부 세력(?)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 희망이 있는가?
베어타운의 몇몇 소수처럼, 한국 사회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피해자들의 편에 서는 배려와 이해의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속이려 하는 자기 기만의 자세와 마주하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하는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책에서 테레사 수녀의 기도문으로 소개되는 아래의 기도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요약하고 있다.
"네가 정직하면 사람들이 너를 속일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라.
네가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이 너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
네가 오늘 선을 행하더라고 내일이면 잊힐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네가 만든 것을 남들이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래도 만들어라.
결국에는 너와 하느님의 일이다. 너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다" (p.16)
한줄 요약: 재미있고, 생각하게 하는 책... 배크만의 책 중 단연 최고!
사족: 아래 사진은 B급 표지라는데... 정말 이 디자인으로 안 하길 잘 한 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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