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 여전히 불행할 99%를 위한 실전 교양
박재용, 뿌리와이파리, 2018. 1
지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한국 사회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실체도 잘 보이지 않는 광풍이 불었다. 사람들마다 4차 산업혁명 정도는 이야기해야 뭔가를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자기도 제대로 모르는 그 단어들을 주어 섬기고, 기업과 학회마다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치열한 고민과 토론들이 벌어졌다. 필자도 이런 흐름에 뒤쳐지면 안 될 것 같아 여러 권의 책들을 보며 "4차 산업혁명"과 그 이후에 벌어질 변화의 물결을 가늠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책마다 전문가임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생경한 단어들을 써 가며 그저 다양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 예상되는 영향을 나열하고 있었으나 그야말로 기술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었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놓는 대안이나 대책들은 한 마디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이 책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될 것이고, 관련 책들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책을 읽고, 그 동안 읽었던 책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이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기술적인 것들에 대해 그렇게 많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딱 기본만큼만... 딱 알아야 할 만큼만 이야기 한다(그래서 더 좋다!).
그 대신 냉철한 시각으로 "4차 산업혁명" 이전에 어떠한 혁명적 변화들이 인류에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러한 혁명의 결과 모든 인간과 자연이 행복하게 되기 보다는 소수의 사람들만 잘 살게 되는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2장에서는 지난 백 년 동안 일어난 혁명적 변화들(대량생산, 전기, 내연기관, 통신)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대한 교양서로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이 변화의 세기에 우리 모두가 어떠한 태도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책을 마무리 하며 저자가 전하는 마지막 음성을 그대로 옮겨 본다.
(이렇게 책이 좋다고 그래도 안 읽을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이거라도 읽으라는 마음으로... )
"누군가는 자신의 시대가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란 데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이는 현재의 변화가 삶의 태도를 바꿀 중요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는 현재 인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여깁니다.
먼저 저는 현재의 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변화가 21세기 들어 시작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멀리 산업혁명에서 가까이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시작된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이란 시대적 모습을 바꾸는 더 근본적인 변화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이런 변화를 정보통신기술(ICT)을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부르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변화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시작되어 인공지능과 여타 기술들이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틀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바꿀 것인가 혹은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답변이 빠진다면, 단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단적으로 더 커지는 모습이 될 뿐입니다. 흔히 2차 3차로 불리는 '산업혁명'들이 만든 것은 대기업 집단과 전 세계의 부를 움켜쥔 1퍼센트, 그리고 가난한 다수로의 양극화입니다. 지금 이 변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량생산과 매스미디어, 일관 조립라인이 20세기에 부를 만들던 방식이라면, 이제 인공지능과 인터넷을 통한 연결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조금씩 만들어 내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새로운 부를 만드는 방식이 된 것일 뿐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그 '부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이 변화를 바라보는 기업의 입장에선 자신이 살아남느냐 아니면 도태되느냐에 대한 절박함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력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이 변화를 자신이 전취하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이 아닙니다. 자본에게 이 변화의 방향을 맡겨서는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이어진 탐욕의 모습이 되풀이될 뿐입니다. 자본가 혹은 기업인이 특별히 악하거나 못돼먹어서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가 그리 인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와 노동조합, 사회단체, 그리고 건강한 정치인들이 자본에 맞서 이 흐름을 우리의 행복을 위한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직접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고, 인터넷을 통한 연결이 시민의 연대가 되고, 노동을 줄이고 기본소득을 확보함으로써 우리가 행복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나 스스로도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먼저 듭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우린 이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해내지 못하면 이 불평등은 더 심화되어 대물림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방향을 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누군가의 피눈물 위에 건설될 4차 산업혁명이라면 그럴 누릴 권리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303-305)
한 줄 요약: 4차 산업혁명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을 것!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을 것! (별 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