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동아시아, 2018.12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인 김승섭 교수의 신작이다. 


끝!


사실 이렇게 포스팅 하고 싶다. 

그만큼 말이 필요없는 책이라는 사실... 


전작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안 읽은 사람이라면 일단 무조건 이 책부터 읽으시길...

(조금 더 자세한 리뷰는 http://yi500.tistory.com/5  를 보시길...)


아무튼 약 1년 3개월 뒤에 나온 그의 신작은 여전하다. 

글이 차분하지만, 논리는 엄정하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지만, 개인의 아픔도 놓치지 않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뭔가 화가 나고(이런 걸 의분이라고 하나??) 그렇지만 조용히 다짐하게 된다. 

특히 책을 마무리하는 저자의 글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뭔가 저절로 따라하게 된다. 

저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고려대 학부생들을 상대로 하는 <공중보건의 역사> 수업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이 마치 좋은 강의를 듣는 것처럼 쉽고 이해가 잘 된다. 한 마디로 전작처럼 굉장히 잘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책을 쉽게 내놓기를 바란 것 같지는 않다. 책으로 내놓기 위해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하며 주제의 범위와 깊이가 수업과는 전혀 다른 책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1,120편의 논문을 검토하고 300 여편의 문헌을 참고했다고 하니 저자가 들인 수고와 공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가늠이 안 된다. 아무튼 독자로서는 지의 성찬을 즐기는 탁월한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튼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그냥 손에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한줄요약: 김승섭 교수의 신작이다! 끝!!!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정기문, 책과함께, 2018.9


아주 재미있는 역사책이 나왔다.

무슨 책이냐 하면 역사 속에 나오는 재미있고, 황당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사실 역사를 보다보면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생각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지금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다. 현재 군산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아예 작심을 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누구나 쉽게 읽고 접할 수 있는 역사책을 출판했다. 


1부인 상식 밖의 역사 이야기에서는 정말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2부인 신과 함께 한 시간들에서는 종교와 미신과 연결된 이야기들을 모았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인류사를 가로지르는 편견과 억압의 역사들을 담고 있다. 정말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고, (나도 꽤 책을 접했다고 생각했으나) 처음 접하는 이야기도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대로 허무맹랑하고 비상식적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그 사건이 일어난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 맥락을 접하게 되면 그 사건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건이고, 당연히 그래야 했다. 참 신기한 책이다. 내 관점과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다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는데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그러므로 요즘과도 같이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이 많이 갈라져 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에 참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 역사책이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역사 이야기도 많이 다루는데 그 이야기 중에 정말 와 닿는 말이 있었다. 직접 저자의 음성을 들어보길... 


기독교의 자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4세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기독교를 사악한 종교로 생각하며 적극 탄압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신론(기독교)이 갈수록 팽창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낯선 자에게 호의를 베풀고, 죽은 자의 무덤을 돌봐주고, 경건한 생활을 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도 구걸하러 다니지 않고 저 불경스러운 갈릴리인들(기독교도들)이 자기들 종파의 가난한 자들 뿐 아니라 (다른 종파의)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우리들이 서로 돕지 않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 말은 비시민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로마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율리아누스는 기독교가 이 점에서 자기들의 관습, 제도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기독교는 시민과 비시민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었다. 물론 가난한 자의 출신 지역이나 그가 시민권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그가 기독교 신자인가 아닌가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이렇게 기독교는 시민과 비시민으로 사람을 나누던 고대의 기준을 무너뜨리고 가난한 자와 부자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으며, 부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의무를 부여했다. 바로 이 점이 기독교가 놀라운 생명력을 가졌던 비결이다. 덕분에 고대 세계가 막을 내리고 중세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120-121).


아무튼 참 재미있고, 재미있고, 재미있는 책이고...

역사는 지루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 줄 요약: 정말 재미난 역사 이야기. 읽다보면 생각을 넓어지는 건 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프런티어, 2018. 8


아~ 드디어 찾던 책을 찾았다. 

청년들에게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사실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또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딱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깊은 성찰과 고민을 담아, 그리고 더 유쾌한 언어와 삶의 증거들로 대신 말해주는 그런 책을 찾았다. 

이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무슨 이야기를 하냐고?

뭐 별 이야기 아니다. 

백수가 되자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주도적인 백수!!!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고전평론가이자 작가인 고미숙 씨는 오랜 시간 청년들과 동거동락하며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함께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그녀가 그동안의 청년들과 함께 고민한 질문들을 노동(일), 관계, 여행, 공부라는 4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를 걸어온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인류가 바야흐로 노동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백수의 삶을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생각하는가?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녀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우선 그녀는 이제는 노동에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자립하여 경제활동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한다. 즉 돈을 번 다음에 잘 살겠다... 이런 헛된 꿈을 꾸지 말고, 지금부터 잘 살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소유와 소비 충동, 나아가 한탕주의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백수가 되면 된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고립에서 공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많은 청년들이 취업과 자격증 등을 위한 공부에 전념하다보니 혼밥에, 혼술에... 자꾸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관계에 있음을 저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므로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스승인 사우의 관계를 만들어가기에 힘쓰라고 한다.


여행이라는 주제에서는 집에서 나와 세상으로 들어가자 부추긴다. 즉 구체적으로 방황하는 좀비가 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탈주하는 유쾌한 노마드가 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소유를 중심으로 인생을 기획하기를 멈춰야 한다. 가벼운 자만이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수는 자연스럽게 생태주의, 나아가 평화주의의 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주제인 공부에서는 대학, 자격증, 취업 등 더 이상 시험을 위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없는 - 출발점도 종점도 없는 - 그러한 공부의 세계로 나아가자고 한다. 특히 100세 시대를 살아가게 될텐데 이 긴 시간을 뭘 하면서 채우느냐 고민하지 말고, 인생과 우주에 대해, 역사와 종교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과 마음에 대해 배우며 끊임없이 지성을 연마하는 그러한 삶을 살자고 강력하게 권면한다. 


어떤가 조금 설득이 되지 않는가?

특히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연암 박지원의 삶과 그의 글들을 통해 풀어낸다. 18세기 조선의 최고의 사상가요 문장가로 알려진 그가 왜 스스로 입신양명의 꽃길을 뒤로 하고 백수의 삶을 살아갔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백수로서의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갔는지, 그리고 그러한 삶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하고 있기에 저자의 생각들이 훨씬 더 와닿게 된다. 


사실 최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금 했었다. 

오늘 소개하는 이 책도 그렇고, 조한혜정 교수님이 쓰신 "선망국의 시간"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단순히 현재의 상황이나 현실적인 문제에만 함몰되지 않고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려면 조금 더 유연한 생각과 또 틀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청년들이나 청년들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정말 상상도 못하던 세상이 계속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고,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의 경험들이 계속해서 새로 고침(F5)해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시기이기에 이 책이 더 귀한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연암의 후예들에게 이 책은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와 저자의 통찰을 잘 비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의 성찬을 제공할 것이고, 무엇보다 현재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용기를 줄 것이라 확신한다.  


아무튼 근래들어 가장 청량감을 느낀 독서 경험이었다. 

단순히 청년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방향과 걸음의 폭에 대해 늘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만족스러운 책읽기가 되리라 확신하며 기꺼이 추천한다. 


한줄 요약: 조선의 청년들이여! 백수로 일어나자!!







둠즈데이북

코니 윌리스, 아작, 2018. 2


SF소설이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우주선? 외계 생명체? 인공지능? 로봇?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러한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둠즈데이북"은 SF소설이라는 장르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위의 어느 것에도 들어가지 않는 전혀 새로운 SF소설이다. 

일단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에 시간 여행이 가능해 진다면  어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할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의 이유로 좋아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자료의 부족으로 고생할 필요도 없고, 유물이나 발굴하며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다. 어떤 시대에 대해 연구한다면, 그저 그 시대로 가서 직접 경험하면 된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인 2054년 인간은 드디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한 여성 역사학도가 14세기 중세로 역사 연구를 떠나는 이야기이다. 물론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 그냥 쉽게 과거를 갔다 오는 것은 아니다.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기술자가 '뭔가 잘못됐습니다' 이러면서 쓰러지고, 주인공인 여성 역사학도도 병에 걸려 쓰러지는 등 생각지도 못한 반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한다). 


사실 이 책은 코니 윌리스라는 1945년 생 할머니 작가의 작품으로 옥스포드 시간 여행 시리즈 중 장편으로는 첫 번째 소설이다.

(단편인 '화재 감시인' -> 둠즈데이 북 -> 개는 말할 것도 없고 -> 블랙아웃... 이 순서로 이어진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코니 윌리스라는 작가는 엄청난 수다로 유명한 작가이다. 사실 이 책도 1,  2권을 합쳐 총 900 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인데, 솔직히 저자의 수다를 조금만 제거했으면 500페이지 정도로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샆다(아무튼 이 어마어마한 말의 폭풍 때문에 이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수다의 벽을 넘어서기만 하면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펼쳐낸 중세의 삶과 죽음, 신앙과 공포,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과 헌신의 놀라운 이야기를 맛볼 수 있다(어떻게 보면 SF라기 보다는 오히려 역사소설에 가깝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1권의 감기몸살 이야기만 잘 넘어간다면 그 뒤는 완전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수작이다. 


코니 윌리스는 평생 휴고상 11회, 네뷸러상 7회 로커스상 12회 등 SF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상을 받았는데, 이 책 역시 출간 즉시 휴고상과 네뷸러상, 로커스 상을 휩쓸었고, 아마존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SF와 판타지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뭐 나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만큼 상도 많이 타고 작가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그런 책이다. 


한동안 이런 저런 일들과 게으름 때문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 글을 자주 못 쓰니 아무 책이나 올리기는 더욱 주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눈 앞에 밀린 여러 일들을 제쳐놓고서라도 꼭 올려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느꼈던 안도와 안타까움을 여러분들도 꼭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한줄요약: SF의 탈을 쓴 수다장이 할머니의 감동적인 휴먼드라마. 별점 5개~!!!








한반도 특강 - 2020 대전환의 핵심현안

정세현, 송민순, 이종석, 김준형, 김동엽, 박영자, 창비, 2018.10


70여년의 분단의 삶을 살아온 한국 사회와 국민들에게 2018년은 어떻게 보면 충격으로 기억될 수 있는 해일 것이다. 

한 해 동안 무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고,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났다. 

2월 평창 올림픽에서 점화된 평화의 불길이 한반도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뒤바꾸어 놓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북한에 대한 생각, 그리고 통일과 평화에 대한 개념들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맞추어 지난 2018년 7월에 의미있는 강연이 있었다. 

창비학당 연속 특강 '2020 한반도 팩트체크'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이 강연과 토론의 내용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왔다. 


1. 변화하는 북한 어떻게 볼 것인가

2. 평양 시민들과 북한 인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3. 완전한 비핵화를 둘러싼 군사안보 쟁점

4.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전략은 무엇인가

5. 외교 현장의 경험으로 남북미 협상을 전망한다

6. 한반도 대전환의 핵심 키워드


이렇게 6개의 주제로 펼쳐졌던 강연이었는데 각 주제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변화들을 가늠하며, 무엇보다 새롭게 우리 가운데 다가오게 될 평화의 시기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전문가들의 안목을 통해 배우고 고민할 수 있는 책이다. 


사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북한이나 우리 나라의 정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만의 관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핏대를 세워가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 그리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생각들이라는 것이 그렇게 충실하고 깊이 있는 정보와 해석이라기 보다는 그저 늘 접하는 신문이나 뉴스, 혹은 인터넷 미디어들을 통해 접한 가벼운 내용들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내 나라 이야기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보니 그저 잘 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에 실제로 가보지도 못한 사람들이고, 우리가 읽고 접하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대부분 그렇다. 또한 그들 역시 북한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그다지 깊이 있는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면면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듯이 북한의 정치 문제는 물론 사회, 경제, 군사 등의 분야에 있어서의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의 기사들보다 훨씬 깊이 있는 전망과 설명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은 대중강연의 내용을 옮긴 것이기 때문에 내용 역시 굉장히 이해하기 쉽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정세는 한반도의 변화를 이끄는 주인이 남과 북이어야 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준다. 미국이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한반도 대전환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도 한반도 대전환 자체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상을 주곤 한다. 결국 한반도에 대한 국제적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남북관계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가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할 때에만 한반도 대전환을 이룰 수 있다. 2018년 들어 세 번째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으로 우리는 그 방향으로 한걸음을 더 내디녔다.... ... 그 사이에 혹시 어떤 어려움이 생긴다고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숙명론에 빠지거나 누가 우리 일을 대신해 주겠지라는 요행론에 기대는 거은 이 중대한 국면에서 가장 경계할 태도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그렇다. 남북의 문제는 그 결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될 우리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며, 그래야 구한말에서 2차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당시 열강의 손익 계산 앞에 우리 자신의 운명임에도 우리 자신의 힘으로 결정하지 못했던 슬픈 역사를 반복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젊은 청년 대학생은 물론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 쥐어 주고 싶다. 


한 줄 요약: 한반도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배워가야 할 필독서

(이제는 좆문가가 아닌 전문가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격한 표현 죄송 ㅠㅠ)


PS: 그리고 창비에게 정말 감사한 것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이 책을 다른 'OO의 시대' 이런 강연 시리즈와 달리 한권의 책으로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 할 수 있는데 그 전에는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박중서 역, 폴라북스, 2013. 9


최근 몇 년 새 한국 사회를 강타한 충격이 있다면 4차 산업혁명과 알파고로 잘 알려진 인공지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화제도 되었고, 단순한 화제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산업이나 학문의 영역 모두에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하게 만들었던 문제였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장밋빛 환상으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게 하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러한 복잡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이런 재미없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다(반성하자!!!).


아무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의 장르가 바로 SF 문학인데(물론 심오한 이유는 없고 재미도 있고 쓸데없는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에도 잘 맞아서 좋아하는 것 뿐인데...) 이게 나름대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사실 이제 과학이 발전하여 인공지능을 만들고 어쩌고 하고는 있지만 SF문학 속에서는 벌써 1960-70년대에 벌써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현재 과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다양한 법제적, 윤리적 문제들 역시 SF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이미 다루어졌던 것들이다. 특히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나 지금 소개하는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이 두 권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책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한국에 그동안 여러 판본으로 나왔지만 최근 필립 K 딕 전집으로 총 12권짜리 전집이 나오면서 다시 출판된 책으로 그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원작소설이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하기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대강의 내용은 식민행성에서 도주해 지구로 잠입한 안드로이드를 추적해 제거하는 현상금 사냥꾼 릭 데카드가 하루 동안 겪는 일들이다. 그는 아파트 옥상에 전기양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값비싼 진짜 동물을 구입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화성에서 도주한 최신형 안드로이드 여섯 대를 뒤쫗던 그는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무엇보다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안드로이드들과의 만남을 통해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 다음은 직접 확인하시길... ^^;;)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컴퓨터를 쓰다가 오래되고 고장나게 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버리거나 처분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이제 과학이 발달하면서 컴퓨터도 인공지능을 장착하게 되고,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과연 그 컴퓨터는 주인이 자신을 폐기 처분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낼 수 있지는 않을까? 내가 컴퓨터라면 주인을 설득하거나, 혹 설득에 실패한다면 데이터를 인질(?)로 삼아 주인과 협상이라도 해 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인공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이 한 번쯤 고민해 볼만한 문제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도 인간과 같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안드로이드는 무엇이 다른가? 

과연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참 의미심장했던 것은...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감정이입 장치'라는 것을 써서 함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들은 이게 안 된다. 즉 서로 공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테스트 역시 감정에 대한 반응을 가지고 구분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공감이 안 되고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설정인데... 이게 설정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위에 쓴 글을 쭉 보니 마치 철학책을 소개하는 것 같기도 한데... 기본적으로 이 책은 SF 소설이고, 소설이 가져야 할 재미나 몰입감 역시 충분하다.

그래서 추천한다. 특히 재미와 의미 두 가지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한줄 요약: 세계3대 SF문학상 중에 하나인 필립 K 딕 상의 바로 그 필립 K 딕이다. 대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느껴보시길!










교회는 언제쯤 너그러워질까 - 삐딱한 목사의 서재

김기대, 삼인, 2018.8


책을 고르다 보면 제목에 꽂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이 책이 그랬다. 어쩌면 그렇게 내 맘을 잘 표현했는지... 

기독교계가 쏟아내고 있는 혐오와 배제의 목소리들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바람이 딱 책으로 형상화되어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김기대 목사님이라고 들어봤는가?

나도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다(정말 저자와는 일면식도 없다).

현재 미국장로교 소속 평화의 교회 목사와 신학교 교수를 겸하고 있다는 저자 소개 외에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도대체 이 분이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만큼 책의 내용이 환상적이다(정말 세상은 넓고 세상에 숨은 고수들이 많다!!!).


사실 이 책은 저자가 읽어 나간 책의 리뷰집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리뷰보다는 저자의 생각을 담담히 적어가면서 그러한 생각과 공명하는 책의 내용들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즉 책에서 빌려온 생각들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마치 잘 차려진 성찬과 같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를 잠깐 옮긴다. 


루터가 성서를 번역(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기존 종교 지형에 파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김기대 목사는 ‘책 읽기’란 책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지금의 구체적 현실로 끌어내어 만나게 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감히 선언한다. ‘창조적 오독’ 속에 천 갈래 만 갈래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는 텍스트가 책을 책으로 살게끔 한다는 것이다. 저자 특유의 이러한 독법으로 인하여, 이 책은 여느 서평집처럼 책만을 위해 바쳐지는 감상문이 아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아픔을 드러내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하며 사유하기도 하는 총체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모두 다섯 가지 주제 아래 60여 권의 책이 다뤄진다. 1부와 2부에서는 신학과 신뢰를 잃은 지 오래된 작금의 한국 교회 자화상을 거침없이 그리면서 교회를 ‘증인들의 공동체’로 다시 세우고자 모색한다. 3부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어려운 ‘대의(代議)’ 민주주의의 근본 한계와 대안을 깊게 성찰하고, 4부와 5부에서는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요즘 세태의 원인을 목회자의 관점에서 사유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책이 없으면 견디지 못했을’ 깊은 좌절과 혼돈의 시대에서 저자를 ‘살게 해주었던 책들’, 그 책들이 꽂힌 한 목회자의 내밀하고 진솔한 서가를 만나보자.


이 책에 대한 유일한 고민은 이 책을 기독교 신간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별 다섯 개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좋은 책이고 교회의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저자의 독서와 사유의 깊이가 상당하다보니 아마 이 책에서 소개되는 책들 중 대부분이 대중들에게 낯선 책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독서의 양과 삶의 경험이 부족한 20대에게는 어렵게 읽힐 수도 있고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아직 사유의 깊이가 부족하고 삶의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에게도 권한다. 

왜냐? 내가 그렇게 부족했으나 이 책을 통해 정말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다. 


한줄요약: 그냥 읽어라.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 여전히 불행할 99%를 위한 실전 교양

박재용, 뿌리와이파리, 2018. 1


지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한국 사회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실체도 잘 보이지 않는 광풍이 불었다. 사람들마다 4차 산업혁명 정도는 이야기해야 뭔가를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자기도 제대로 모르는 그 단어들을 주어 섬기고, 기업과 학회마다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치열한 고민과 토론들이 벌어졌다. 필자도 이런 흐름에 뒤쳐지면 안 될 것 같아 여러 권의 책들을 보며 "4차 산업혁명"과 그 이후에 벌어질 변화의 물결을 가늠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책마다 전문가임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생경한 단어들을 써 가며 그저 다양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 예상되는 영향을 나열하고 있었으나 그야말로 기술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었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놓는 대안이나 대책들은 한 마디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이 책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될 것이고, 관련 책들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책을 읽고, 그 동안 읽었던 책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이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기술적인 것들에 대해 그렇게 많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딱 기본만큼만... 딱 알아야 할 만큼만 이야기 한다(그래서 더 좋다!).

그 대신 냉철한 시각으로 "4차 산업혁명" 이전에 어떠한 혁명적 변화들이 인류에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러한 혁명의 결과 모든 인간과 자연이 행복하게 되기 보다는 소수의 사람들만 잘 살게 되는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2장에서는 지난 백 년 동안 일어난 혁명적 변화들(대량생산, 전기, 내연기관, 통신)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대한 교양서로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이 변화의 세기에 우리 모두가 어떠한 태도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책을 마무리 하며 저자가 전하는 마지막 음성을 그대로 옮겨 본다. 

(이렇게 책이 좋다고 그래도 안 읽을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이거라도 읽으라는 마음으로... )


"누군가는 자신의 시대가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란 데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이는 현재의 변화가 삶의 태도를 바꿀 중요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는 현재 인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여깁니다. 


먼저 저는 현재의 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변화가 21세기 들어 시작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멀리 산업혁명에서 가까이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시작된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이란 시대적 모습을 바꾸는 더 근본적인 변화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이런 변화를 정보통신기술(ICT)을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부르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변화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시작되어 인공지능과 여타 기술들이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틀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바꿀 것인가 혹은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답변이 빠진다면, 단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단적으로 더 커지는 모습이 될 뿐입니다. 흔히 2차 3차로 불리는 '산업혁명'들이 만든 것은 대기업 집단과 전 세계의 부를 움켜쥔 1퍼센트, 그리고 가난한 다수로의 양극화입니다. 지금 이 변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량생산과 매스미디어, 일관 조립라인이 20세기에 부를 만들던 방식이라면, 이제 인공지능과 인터넷을 통한 연결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조금씩 만들어 내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새로운 부를 만드는 방식이 된 것일 뿐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그 '부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이 변화를 바라보는 기업의 입장에선 자신이 살아남느냐 아니면 도태되느냐에 대한 절박함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력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이 변화를 자신이 전취하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이 아닙니다. 자본에게 이 변화의 방향을 맡겨서는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이어진 탐욕의 모습이 되풀이될 뿐입니다. 자본가 혹은 기업인이 특별히 악하거나 못돼먹어서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가 그리 인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와 노동조합, 사회단체, 그리고 건강한 정치인들이 자본에 맞서 이 흐름을 우리의 행복을 위한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직접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고, 인터넷을 통한 연결이 시민의 연대가 되고, 노동을 줄이고 기본소득을 확보함으로써 우리가 행복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나 스스로도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먼저 듭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우린 이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해내지 못하면 이 불평등은 더 심화되어 대물림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방향을 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누군가의 피눈물 위에 건설될 4차 산업혁명이라면 그럴 누릴 권리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303-305)


한 줄 요약: 4차 산업혁명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을 것!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을 것! (별 다섯!)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2013.6


책을 읽다보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읽기를 끝마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책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책을 읽을 당시 내 삶의 자리가 불안정하거나, 무언가 긴급하게 나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 계속하여 생겨나 읽기를 마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밤은 선생이다"가 그랬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이신 황현산 선생께서 쓰신 첫 번째 산문집이다. 

처음에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던 때가 지난 2017년이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노회찬의원이 문재인 대통령부부에게 선물을 하면서 뉴스를 탔었다. 


그래서 그 때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여러 이유로 끝을 맺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달 8일 황현산 선생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뭔가 빚진 마음으로 곧 읽기를 마치기는 했지만, 글로 정리하려고 하자 또 긴급한 일들이 발목을 잡는... 참 내게는 어떤 의미로 참 특별한 책이다. 


이렇게 개인적으로는 사정이 참 많기는 했지만, 그 어떤 책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어간 책이다. 


읽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사실 이 책은 황현산 선생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낸 책이고, 그 글도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 쓰여진 글들이라 뭔가 주제가 하나로 엮이지 않는 것 같고 형식도 조금씩 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즉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도 또 사회적인 주제를 묵직한 목소리로 성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선생의 글 속에서는 일상과 사회문제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황현산 선생은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이 얼마나 깊이 사회 문제들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또한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 역시 일상 속에 켜켜이 쌓인 삶의 굴곡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를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들로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 글들이 그다지 길고, 또 난해하지 않은데도 읽는 이에게 주는 울림이 참 크고 깊다는 것이다.  


내게는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참 술술 읽히는 좋은 글들이고, 그 글들을 통해 한 노학자의 평생이 담긴 깊이 있는 성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말 기쁨 마음으로 일독을 추천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한 줄 요약: 밤이 길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 인생의 선생을 찾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이다!



* 참고로 책 제목은 프랑스 속담 ‘La nuit porte conseil’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사실 이 문장은 ‘밤은 충고(가르침)를 가져다 준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불문학자답게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지게 번역했다.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12.6


정말 재미있는 책 한 권 소개한다!

제목 그대로 "제노사이드"를 다룬 책이다. 


그럼 제노사이드가 뭐냐?

일단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개념부터 소개해 본다.


폴란드계 유대인이자 국제변호사였던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에 의해 20세기 중반에 정립된 개념이다그리스어로 인종을 뜻하는 Genos와  살해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Caedo, Caedare의 합성어로써 주로 '집단 살해'라고 번역된다.

 

주로 특정 인종종족종교이념국가적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하기 위한 의도적 행동을 가리킨다그 주체는 정부나 정규군일 수도 있으나(홀로코스트민병대와 같은 자생적인 점조직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도 많다(르완다 내전).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의도로행위와 상관 없이 의도가 없으면 법적으로 제노사이드가 설립되지 않으며의도가 있다면 집단의 '점멸이외에도 타 민족의 피를 더럽히기 위한 강간 등 다른 행위도 제노사이드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고대에서도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다예를 들어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뒤 카르타고가 재기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파괴학살을 자행했던 것이 대표적그러나 20세기 들어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횡행고도의 산업력과 행정력을 가진 국민 국가(Nation State)의 등장그리고 과학 기술과 무기의 발달로 인해 집단 살해가 더 자주더 대규모로 발생하기 시작했다그 중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벌인 홀로코스트의 각종 대학살이 유명하다.

 

그 결과 종전 후 집단살해 범죄를 정의하고 방지하기 위해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CPPCG)'이 만들어졌다대한민국도 1950년에 이 조약에 가입했으며, 1995년에 제정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이러한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단체에게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제노사이드는 대상 집단의 '절멸'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으며때에 따라선 '민족적 거세'라는 제한 목표를 설정하여 남성을 학살로 제거하고가임기 여성으로 판단되는 적대인종 민간인이나 여군을 성노예로 만들어 성욕 해소 뿐 아니라 자인종의 핏줄이 섞인 아기를 임신시켜 여성들에게 혼혈 아이를 낳게 함과 순수한 핏줄을 더럽히는 동시에 적대국 국민에 대한 굴욕감을 심고 종교적 신앙까지 파괴하는 인종청소 전쟁범죄를 조직적으로계획적으로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개념 중 하나로인권유린의 극한을 달리는 범죄이다학살이나 약탈은 기본으로강간윤간고문 등의 반인륜적 범죄가 총동원되는 인간말종 백화점이다.

 

다만 특정 계급을 겨냥한 학살은 역설적으로 제노사이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가령 이오시프 스탈린은 중산층 농민을 학살한 바 있는데 이는 UN협약에서 정한 제노사이드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즉 이렇게 어떤 대상 집단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는 것을 제노사이드라고 하는데, 저자는 사망자 수만 약 400만 명에 달한 콩고 내전을 배경으로 인간은 왜 다른 인간들을 그렇게 죽이지 못해 안달인 것이까... 하는 질문을 계속 우리들에게 던진다. 특히 일본인 답지 않게 난징대학살이나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들을 학살했던 자기네 역사도 반성하면서 기록하는데 이것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저자의 역사관에 반발한 사람이 꽤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자세한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한다. 

그러나 이 책은 추리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폭이 넓다. 인류학, 진화론, 국제정치, 의학, 약제학, 밀리터리 등 다양한 상황을 넘나들며 독자에게 풍성한 지적 만족감까지 던져주는 그런 책이다. 특히 신약을 개발하는 자세한 과정은 정말 저자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공부를 했을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듣기로는 무려 25년간 치밀한 자료 조사와 준비를 통해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과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국, 일본, 콩고, 이라크, 남아공 등등 블록버스터를 방불케하는 스케일도 대단하고 유치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반전도 짜릿하다!

이 더운 날 밖에 나가 놀기도 뭐하고... 특히 방학 중에 한가로이 책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한줄 요약: 하루가 내 인생에서 그냥 사라지는 책!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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