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2013.6
책을 읽다보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읽기를 끝마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책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책을 읽을 당시 내 삶의 자리가 불안정하거나, 무언가 긴급하게 나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 계속하여 생겨나 읽기를 마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밤은 선생이다"가 그랬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이신 황현산 선생께서 쓰신 첫 번째 산문집이다.
처음에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던 때가 지난 2017년이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노회찬의원이 문재인 대통령부부에게 선물을 하면서 뉴스를 탔었다.
그래서 그 때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여러 이유로 끝을 맺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달 8일 황현산 선생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뭔가 빚진 마음으로 곧 읽기를 마치기는 했지만, 글로 정리하려고 하자 또 긴급한 일들이 발목을 잡는... 참 내게는 어떤 의미로 참 특별한 책이다.
이렇게 개인적으로는 사정이 참 많기는 했지만, 그 어떤 책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어간 책이다.
읽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사실 이 책은 황현산 선생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낸 책이고, 그 글도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 쓰여진 글들이라 뭔가 주제가 하나로 엮이지 않는 것 같고 형식도 조금씩 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즉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도 또 사회적인 주제를 묵직한 목소리로 성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선생의 글 속에서는 일상과 사회문제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황현산 선생은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이 얼마나 깊이 사회 문제들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또한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 역시 일상 속에 켜켜이 쌓인 삶의 굴곡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를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들로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 글들이 그다지 길고, 또 난해하지 않은데도 읽는 이에게 주는 울림이 참 크고 깊다는 것이다.
내게는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참 술술 읽히는 좋은 글들이고, 그 글들을 통해 한 노학자의 평생이 담긴 깊이 있는 성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말 기쁨 마음으로 일독을 추천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한 줄 요약: 밤이 길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 인생의 선생을 찾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이다!
* 참고로 책 제목은 프랑스 속담 ‘La nuit porte conseil’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사실 이 문장은 ‘밤은 충고(가르침)를 가져다 준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불문학자답게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지게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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