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

오찬호, 동양북스, 2018.1

반양장본 | 304쪽 | 210*152mm | 437g | ISBN : 9791157683352


“The Matrix is a system, Neo. That system is our enemy. But when you're inside, you look around, what do you see? Businessmen, teachers, lawyers, carpenters. The very minds of the people we are trying to save. But until we do, these people are still a part of that system and that makes them our enemy. You have to understand, most of these people are not ready to be unplugged. And many of them are so inured, so hopelessly dependent on the system, that they will fight to protect it.”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그 시스템 전부가 우리의 적이야. 그 시스템이 우리의 적이다. 둘러보면 뭐가 보이나?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 우리가 구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지. 하지만 그들도 시스템의 일부니까 우리의 적이지. 이들 대부분은 아직 떠날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들은 너무나도 시스템에 잘 길들여져서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하지"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모피어스의 유명한 대사이다. 

그런데 바로 이 대사가 이 책이 쓰여지게 된 동기와 너무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렇기에 당연히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 순수하게 내 마음이라 생각했던 것들, 우리를 조종하는 각종 이미지들,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통계의 숫자들... 이 모든 것을 사회라고 하는 시스템 속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트릭스 안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속기 쉽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수한(?) 사람이 많을 수록 사회는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되어 간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빨간 약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대통령을 꿈꾸는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 해마다 묵직한 책들을 내놓고 있는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이 책을 쓴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점이다. '나'는 사회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회문제를 만들어 내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 두 지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는 '사회가 변한다고 내 삶이 달라지느냐'는 식의 체념이 쉽사리 등장하지 못한다. 우리가 희망하는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그 성찰을 동력 삼아 현재의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노력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초석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초인간적으로' 살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고, 결혼할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개천에서 용이 되지 않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행복한 사회는 이런 관심으로 만들어진다. 이 당연한 것이 낯선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이 책이 그 낯섦을 조금이나마 다시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였으면 한다" - pp.15-16.


특히 대학의 신입생 같이 처음으로 사회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 혹은 사알못(사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꼭, 강제로라도, 읽히고 싶은 책이다. 


강추 별 다섯!!!



해마다 3월이면 이런 기사가 올라온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추천하는 도서 00권" "대학생이라면 읽어야 할 필독서"

개인적으로 대학생들을 자주 만나는 처지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풋풋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어른인 척 하는 그들을 볼 때면 정말 기분 좋은 청량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수능과 내신, 그리고 끝없는 경쟁에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했던 청소년들이 대학생이 되었다고 저절로 사회를 보는 안목이 생기고 지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 때에 읽어야 할 여러 필독 도서들이 있고, 진중하고 성실하게 그 책들을 만나고 읽어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의 지평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가야 할까? 이게 사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고, 또 고전이나 소개받은 책을 읽으려고 시도는 하는데, 평소에 독서를 잘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책이 술술 읽히고 그럴 리가 없다. 조금 읽다가 스마트폰, 조금 읽다가 게임, 조금 읽다가 포기... 이런 악순환을 겪게 되기 일쑤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대학 신입생들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 준다면 항상 생각하는 것이 이 책이 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가 하는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부실하거나 깊이가 없는 책을 추천해 줄 수도 없다).


그럴 때 항상 머릿속에 첫 번째나 두 번째로 생각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성인들이 대상이 아니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도 구어체로... 심지어 반말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고 말만 반말에 구어체인 것이 아니라 내용도 저자와 독자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내용을 잘 담아내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18가지 통념을 추려내어서 그것들이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되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귀한 책이다. 


한 두 가지의 생각들을 소개한다면... 

"개천에서 용 난다" 

"대기업이 잘 되면 모두에게 좋다"

"규제가 없어야 경제가 성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상당 수의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 생각할 것이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현실 속의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궁금한가?

그러면 이 책이 딱이다!


청소년이나 대학 신입생 말고도 사회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으로 정말 개인적으로 강추한다. 

 

내 맘대로 별점: 꽉꽉 눌러 담은 다섯!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동아시아, 2017.9

양장본 | 320쪽 | 210*148mm (A5) | 538g | ISBN : 9788962621952


해마다 연말이면 연례행사처럼 언론사에서 올해의 OO을 선정한다. 

한 해 동안 울궈먹고 팔아먹은 것들 다시 한 번 어떻게 해 보겠다는 광고 의지가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특히 조선일보 이런 데는 심한 듯... 올해의 기업상 이런 느낌으로 아예 광고면을 특집으로 내더라...) 관심 분야에 이런 기사가 올라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본다. 특히 언론사들이 나름의 추천위원을 선정해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기사는 꼭 챙겨보는 편이다. 내가 편식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무지로 지나친 책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런데 작년 2017년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책 한 권이 각종 언론사의 추천 목록에 거의 다 들어갔을 뿐 아니라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경향, 동아, 문화, 중앙, 한겨레의 선택을 받았는데... 역시 조선은 선택하지 않았다. 역시 조선이다)

그 책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고려대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다. 


병의 원인을 찾는 역학자(epidemiologist)로서 저자는 특히 사회적 경험이 어떻게 우리의 몸에 스며들어 병이 되는지를 추적한다. 

고용불안, 차별, 혐오, 가난, 참사 등 인간이 감당해 내기 어려운 육체적, 심리적 고통은 정말로 인간을 병들게 하고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저자는 선행 연구의 데이터와 함께 저자 자신이 수집하고 분석한 데이터를 가지고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들을 통해 사회적 원인으로 인한 질병은 결국 사회적 해결책을 통해서만 치유가능함을 보여준다. 


사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꽤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데이터... 연구... 분석... 차트... 이런 것이 재미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은 정말로 술술 넘어간다. 3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그 배경과 함께 이야기로 잘 풀어내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가 이야기하는 숫자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특히 이기심을 뛰어넘어 함께 살아가자고 손을 내미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올해 말에 2018년 올해의 책을 내 마음대로 선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 이른 생각이기는 하지만 1위 아니면 2위는 이 책이다. 


추천점수: 100점, 

내 맘대로 별점: 별 다섯 






레드 스패로우 1,2

제이슨 매튜스, 박산호 역, 오픈하우스, 2015.11


레드 스패로우 3,4 - 배반의 궁전

제이슨 매튜스, 박산호 역, 오픈하우스, 2016.9


이번에는 장르소설이다. 그것도 스파이소설.


애서가들중에는 교양있고 수준 높은 책들만 읽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애서가는 아니다.

만화부터 시작해서 SF,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책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쪽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때가 있는데 그 때 소개하는 책이 이 책 아니면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이다.

뭐 고전적인 명작들도 있겠지만 재미를 위해 읽는 책인데 족보 따져가며 읽기도 그렇고 재미있으면 땡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제이슨 매튜스라는 사람인데 33년간 CIA요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 나오는 스파이 기법들과 각종 첩보 작전이 정말 실감난다. 

원래는 레드 스패로(Red Sparrow), 배반의 궁전(Palace of Treason), The Kremlin's Candidate(미번역) 이렇게 3권으로 된 3부작 작품인데, 뭐 장사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출판사는 각 권을 2권으로 분권해서 내주었고, 두 번째 책인 배반의 궁전을 레드 스패로우 3-4권으로 제목을 붙여서 출판했다(부제라도 배반의 궁전이라고 써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주된 줄거리는... 

아름다운 미모와 공감각 능력을 타고 태어난 도미니카라는 여주인공이 촉망받는 발레리나로 성장하던 중 그녀를 시기하던 라이벌 때문에 부상을 당해 발레를 포기하게 되고, 집안의 어려움 때문에 러시아 첩보부의 부국장인 삼촌의 제안을 받아들여 첩보원이 되어 활약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류의 책은 줄거리를 스포하면 안 되니 이 정도 하겠다.


영화로 이번에 개봉한 걸로 알고 있는데...

원래 영화는 잘 보지 않는 터라 당연히 안 봤다.

대중의 평을 들으니 망작이라는 것 같다(안 본 내가 승자다!).

예고편과 관련 영상을 보니 일단 책을 보며 상상한 사람들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 망하지...




아무튼 여전히 동서가 냉전 중에 있는 것처럼 치열하게 벌어지는 첩보 작전들과 스파이들의 활약상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99점. 

내 맘대로 별점: 다섯 개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강상중 저, 노수경 역, 2017.3

반양장본 | 184쪽 | 188*128mm (B6) | 208g | ISBN : 9791160940480


...


나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아... 다들 그러려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데도 어렵게 하거나 반복해서 읽거나 들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대하게 되면 많이 짜증이 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쉽게 전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만큼 그 주제에 대해 공부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히는 책을 만나면 참 좋다.

저자의 차가운 지성이 따뜻한 마음과 함께 전달될 때 나도 마음을 열고, 설득당할 준비를 하며 책을 읽는다.


......


요즘 뉴스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끔찍한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에 뉴스를 접할 때마다 긴장으로 마음이 두근두근한다.

도대체 사람은 왜 이렇게 악한 것일까? 세상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왜 악한 사람 때문에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상실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가?


이러한 주제들이 쉬워 보이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무거운 주제들을 저자는 특유의 담담하고 다정한 말투로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저자인 강상중 씨의 책은 "구원의 미술관" 이후 두 번째 책이다. 

이전의 책에서와 같이 저자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지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펼쳐 보인다. 


- 악의로 가득한 세상

- 악이란 무엇인가

- 왜 악은 번성하는가

- 사랑은 악 앞에서 무력한가


이렇게 4개의 장으로 구성된 본 책에서 저자는 악이란 무엇이고, 왜 그 악이 번성하는가에 대해 자신의 이해를 그레이엄 그린, 토마스 만, 밀턴, 윌리엄 골딩, 소세키(발음에 주의하자!) 등의 목소리를 빌려서 들려준다.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사랑은 악 앞에서 무력한가'라는 질문을 다룬 제4장의 내용이다. 


사실 비판하는 것은 쉽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지적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비판자가 된다. 그에 비해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대안은 찾아보기 어렵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은 악의 기원과 그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물론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고민해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이 꿈은 이해에 더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꿀 수 있는 꿈이다).


......


세상과 자기 안에 있는 그 모든 악과 타락을 대면하고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자신을 사랑하는(p. 159) 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실현될 때 우리는 이 악의 시대를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타자와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악의 연쇄를 인간의 연쇄로 바꾸어 가기를 소망하는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이 사회는 회복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p. 168). 



......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아니면 읽었다... 기억이 안 난다. ㅈㅈ).


낙관주의와 소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낙관주의는 상황이 긍정적일 때 가지는 것이지만, 소망은 상황과 상관없이 가지는 것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회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소망을 품은 사람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걸어갈 때, 이 삭막하고 어두운 세상은 조금 더 살아갈 만 한 세상이 될 것이다. 

어떤 모양이든 믿음을 품은 사람이라면 그 믿음에 더해 이 소망을 품었으면 좋겠다.


내 맘대로 평점: 별 다섯. 닥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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