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프런티어, 2018. 8
아~ 드디어 찾던 책을 찾았다.
청년들에게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사실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또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딱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깊은 성찰과 고민을 담아, 그리고 더 유쾌한 언어와 삶의 증거들로 대신 말해주는 그런 책을 찾았다.
이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무슨 이야기를 하냐고?
뭐 별 이야기 아니다.
백수가 되자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주도적인 백수!!!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고전평론가이자 작가인 고미숙 씨는 오랜 시간 청년들과 동거동락하며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함께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그녀가 그동안의 청년들과 함께 고민한 질문들을 노동(일), 관계, 여행, 공부라는 4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를 걸어온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인류가 바야흐로 노동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백수의 삶을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생각하는가?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녀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우선 그녀는 이제는 노동에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자립하여 경제활동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한다. 즉 돈을 번 다음에 잘 살겠다... 이런 헛된 꿈을 꾸지 말고, 지금부터 잘 살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소유와 소비 충동, 나아가 한탕주의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백수가 되면 된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고립에서 공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많은 청년들이 취업과 자격증 등을 위한 공부에 전념하다보니 혼밥에, 혼술에... 자꾸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관계에 있음을 저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므로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스승인 사우의 관계를 만들어가기에 힘쓰라고 한다.
여행이라는 주제에서는 집에서 나와 세상으로 들어가자 부추긴다. 즉 구체적으로 방황하는 좀비가 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탈주하는 유쾌한 노마드가 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소유를 중심으로 인생을 기획하기를 멈춰야 한다. 가벼운 자만이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수는 자연스럽게 생태주의, 나아가 평화주의의 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주제인 공부에서는 대학, 자격증, 취업 등 더 이상 시험을 위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없는 - 출발점도 종점도 없는 - 그러한 공부의 세계로 나아가자고 한다. 특히 100세 시대를 살아가게 될텐데 이 긴 시간을 뭘 하면서 채우느냐 고민하지 말고, 인생과 우주에 대해, 역사와 종교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과 마음에 대해 배우며 끊임없이 지성을 연마하는 그러한 삶을 살자고 강력하게 권면한다.
어떤가 조금 설득이 되지 않는가?
특히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연암 박지원의 삶과 그의 글들을 통해 풀어낸다. 18세기 조선의 최고의 사상가요 문장가로 알려진 그가 왜 스스로 입신양명의 꽃길을 뒤로 하고 백수의 삶을 살아갔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백수로서의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갔는지, 그리고 그러한 삶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하고 있기에 저자의 생각들이 훨씬 더 와닿게 된다.
사실 최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금 했었다.
오늘 소개하는 이 책도 그렇고, 조한혜정 교수님이 쓰신 "선망국의 시간"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단순히 현재의 상황이나 현실적인 문제에만 함몰되지 않고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려면 조금 더 유연한 생각과 또 틀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청년들이나 청년들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정말 상상도 못하던 세상이 계속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고,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의 경험들이 계속해서 새로 고침(F5)해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시기이기에 이 책이 더 귀한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연암의 후예들에게 이 책은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와 저자의 통찰을 잘 비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의 성찬을 제공할 것이고, 무엇보다 현재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용기를 줄 것이라 확신한다.
아무튼 근래들어 가장 청량감을 느낀 독서 경험이었다.
단순히 청년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방향과 걸음의 폭에 대해 늘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만족스러운 책읽기가 되리라 확신하며 기꺼이 추천한다.
한줄 요약: 조선의 청년들이여! 백수로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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