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조지 레이코프, 엘리자베스 웨흘링, 생각정원
나는 진보인데 솔직히 보수의 말에 끌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확실히 주변을 보면 정말 보수의 말에 끌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보수의 말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지와 소통에 대한 많은 오해와 무지들을 밝혀주기 때문에 중간 중간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사고는 의식적이다. 사고는 축자적이며,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 그대로를 반영한다. 그리고 사고는 보편적이며, 우리는 모두 동일하게 사유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생각이 구시대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사고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사고가 은유와 같은 심적 구조에 의존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마음 속 인지적 틀에 근거해 다르게 사유한다. 인간의 사유와 의사 결정에 대한 현대의 연구는 전통적인 합리주의의 핵심 개념과 충돌한다. 그러므로 합리주의는 신화이다." (p. 170)
사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의미가 어렵거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지심리에 대한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다. 궁금하거나 관련 직종에 종사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또 프레임 이론을 내세운 사람답게 정치에 있어서 프레임의 중요성도 설명을 한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부모의 틀로 보수와 진보의 특징과 방향성을 설명하는데 미국의 상황에 근거해 쓰여졌기에 100% 와닿지 않는 내용도 있기는 하지만 그 설명의 틀만큼은 정말 이 책의 값을 지불한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가 토론 속에서 프레임을 만들어 가는 것을 설명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것이 바로 세금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 주제는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익숙하다.
과거 보수 정권에서는 '세금 폭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고 그 결과 세금에 대해서 당연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결이 되었다.
즉 '세금'은 폭탄이고 세금을 부과하는 사람은 폭격을 하는 사람이고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영웅이라는 것이다.
사실 누가 세금을 많이 내고 싶겠는가? 그래서 막연하게 세금을 줄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당시 "전 국민의 2%도 안 되는 부동산 거부들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려고 했던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나쁜 악당이 되었고, 당시 반대하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선한 사람들이 되었으며, 특히 선두에서 이를 지휘하던 박근혜 대표는 영웅이 되었다. 결국 '세금 폭탄'이라는 어구는 '경제 살리기'라는 어구와 함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p. 283)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고, 헬조선 담론이 젊은 세대들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 쪽에서는 세금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레이코프는 "공동재산"이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즉 사회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부를 창출하고 이를 사용한다.
시민들은 세금을 통해 돈을 함께 모으고, 그 다음에 이 자금을 사용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기반 시설을 짓고 유지한다.
그러므로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공동의 부를 이용하고 있고, 특히 사업을 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이 공동의 재산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거대한 기업체를 운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이 기반 시설을 더 많이 사용한다면, 이 기반 시설을 유지하는 데 공정한 몫을 내야 한다.
이렇게 '세금 폭탄'이라는 프레임 대신 '공동재산'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여, 공동의 재산과 기반 시설을 더 많이 사용하니 당연히 세금도 더 내야 한다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정말 프레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예가 아닐 수 없다.
길게 이것 저것 끄적거렸는데...
정치는 물론 사회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미국의 상황에 근거한 책이라 별을 하나 빼기는 했지만 한국의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식으로 책이 진행되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고, 짧은 내용 속에 레이코프의 전작에 등장하는 기본 개념들이 거의 다 등장하기 때문에 이 한 권으로 다른 책들을 가볍게 읽게 되는 그런 이점도 있다. 한 마디로 개이득이다!
한줄 요약: 이게 뭔 소리야 하다가 어느 새 100 페이지가 넘게 넘어가 있는 이상한 책!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된 것 같은 신비한 느낌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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